“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하나를 꼽으라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설문서를 통한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몇 년 전에 한 프랑스의 미디어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많고 많은 발명품 중에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기술이 왕중왕으로 뽑혔다.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자랑스러운 조상의 숨결을 느끼는 우리 한국인들의 감회는 매우 클 것이다. 이와 함께 금속활자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선정된 연유와 의미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어제의 역사와 오늘의 역사를 연결함으로써 보다 창조적인 미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인류문명(human civilization)의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혁명은 구텐베르크의 발명 후 얼마 되지않아 일어난 사건으로 대중과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마틴 루터 자신도 금속활자를 신이 내린 은총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인류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장벽은 크게 언어능력과 지식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미FTA도 한-미 이해 당사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산물이다. 한-미FTA 협상커뮤니케이션에서 사실상의 표준언어는 영어다. 글로벌시대에 모국어 대신에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언어장벽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필자의 한-미FTA 특종보도 몇 달 후인 1985년 2월 주한미국대사관에서는 서울의 주요 일간지 정치부와 경제부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을 초청하여 도고온천에서 1박2일의 세미나를 주최했다. 좀 이상했던 것은 주최 측이 약 30명에 달하는 한국 기자들에게 회의주제 및 진행방법에 대한 어떠한 사전통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묻지마 세미나”였다. 주제발표자나 지정토론자가 없는 Random Discussion에서 미국 측 진행자가 “요즘 한국 어떻게 돌아갑니까?”라고 운을 띄었다. 회의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온통 국제그룹사건에 대한 미주알고주알 식 리포트였다. “양정모 회장이 부산에서 청와대 회의에 급히 참석하려고 했으나 폭설로 인하여 교통이 두절되었고… 그 결과 국제그룹은 해체되었다…”라는 말도 나왔다.

토론의 포커스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제얘기 보다는 양국간의 주요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자고 했다. 그렇지만, 토론이라기보다는 영어 컨테스트장 같은 분위기속에서 나의 주장이 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는 비장의 카드를 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미국의 대한국 통상압력의 조짐이 심각한 것 같다. 몇 달 내 미국은 한국의 담배시장 개방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 라고 공세를 폈다. 담…배…회의 분위기는 급전했다.

사실 그 당시 담배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 시절 산자부 통상담당관이 담배얘기 잘못 꺼내 기관원으로부터 사무실 수색을 당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담배문제 제기로 국제그룹 이야기는 끝나고 그 날 오후 토론회부터 한-미 간의 통상문제에 관한 진지한 의견을 나누었다. 도고 세미나 직후 도하 각 신문과 방송에서 미국의 대한 담배시장 압력기사가 Headline을 장식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소위 “Section 301조”에 입각하여 양국간 통상 문제를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미국상품에 대한 우리나라 시장이 닫혀있기 때문에 한국의 주력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동차 등의 대미시장 진출에 제동을 걸겠다고 위협했다.

이번 한-미FTA 협상에 참여했던 팀장급 대표들의 85%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조차도 영어뿐만 아니라 관련지식 등과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느꼈을 것이다. 30여년 이상 영어로만 글을 써서 밥 벌어 먹고 살아온 필자로서, 아니 누구보다 많은 관련 공무원들과 개별 접촉을 해왔기에 하는 주관적인 판단이다. 영어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전혀 없다고 하면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미국인이라고 해서 영어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영어 자체는 별로 문제가 없겠지만 모르는 내용을 접하면 장벽이 생긴다. 우리 회사에서 15년이상 근무한 Native Speakers들을 나는 영어를 쓰는 기계(hardware)로 생각하지 완벽한 영문 Writer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확한 내용(content)을 모르기 때문이다. Software (컨텐츠)와 Hardware (영어능력)의 결합으로 영어 Communication Content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미FTA 협상대표들의 영어 커뮤니케이션 장벽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볼 때 빙산의 일각이다. (a tip of iceberg). 앞으로가 문제이다. 한-미FTA시대 열차는 달려오고 있는데, 영어 커뮤니케이션 장벽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안 보인다. 왜 그들은 침묵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관리들의 3불중의 하나가 “나는 능력이 모자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영어 잘 못합니다”라고 하면 승진의 길이 막히는 것이다.

커밍아웃(coming out)은 “Coming Out of Closet”에서 유래한 용어로 “벽장 속에서 나오다”의 뜻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매우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통상관리들도 영문컨텐츠 부문에서 “커밍아웃”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의 우리 경제가 산다. 그들이 정확하게 영어커뮤니케이션 장벽을 이야기해야 대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