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5년초 주한 미국대사관의 “묻지마 세미나” 사건에 이어 그 해 연말에는 우리나라 경제부처 관료들의 “묻지마 회의”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뤄야 했다. 그 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열렸던 한-미 통상회의 취재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양국간의 우호관계에 익숙해 있었던지라, 그해 12월 25일전 통상협상 타결이 이루어져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그 당시 경제기획원 출입기자였던 나뿐만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바램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3일 정도의 회의라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어떤 회의 결과 발표가 없었다. 「언제까지 회의가 열릴 것인가?」 라는 질문에도 굳은 표정의 담당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른다. 오직 신만이 안다”였다.

한-미 고위관리들의 회의 자체가 큰 사건이기 때문에 편집국에서는 일면 톱기사로 정했으니 기사를 빨리 송고하라고 하니 심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회의장은 마치 교도소처럼 굳게 잠겨져 있었다. 같은 5층에 있는 담당과에 들어가 보니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기사거리 찾기에 굶주린 나의 눈에 한순간 탁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실무자 옆자리에 놓여있던 쓰레기통속의 종이 뭉치였다.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우선 집어 들고 1층 기자실의 골방으로 튀었다. 그것을 펴보니 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 같은 흔적이 있었으나 너무 조각이 나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타사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함께 작업했다. 조각, 조각을 맞추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복사를 했다. 내용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양국간 현안 문제 10여건에 대한 테이블 정리가 특이해 보였다.

그렇지만 전후 문맥으로 보아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메모 그대로의 내용을 기사화 한다는 것은 마치 소설을 쓰는 것 같았다. 그 자료와 종전의 컨텐츠를 모자이크해 그날의 기사를 송고했다. 정말로 아쉬웠던 것은 우리측 대표들은 기자들이 접근하면 문둥이 보듯이 피해가고 어렵게 다가가 물어보면 무조건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가 중대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의 커뮤니케이션 단절,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그 “묻지마 회의”와 관련하여 나는 세가지 연이은 시련을 격어야 했다. 그 날 저녁 퇴근하려할 때 편집국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사에 배달된 조간신문들의 가판 1면에 시커멓게 도배한 한-미 통상회담 내용 때문이었다. 타신문 내용 무조건 베끼라고 하는 상사의 명령을 거역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소설식 기사를 쓸 수도 없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얼마후 기획원에서는 버리는 자료중에서 보안이 필요한 것은 분말처리하는 소위 스파이킬러 머신을 외국에서 들여왔다. 스파이킬러 가동식에서 “배철수 킬러”라는 이름도 함께 불려졌다는 후문을 듣고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쓰레기통 뒤지며 취재하랴, 기사 내용 때문에 편집국장에게 시달리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한-미 통상회담이 끝난 저녁 마무리 기사를 송고한 후 편집국 간부들과 뒤풀이를 했다. 용산의 털보 집에서 시작한 그 회식은 “오동주야 날이 밝아”가 되어버렸다. 그날이 마침 월급날인 것이 문제였다. Nothing for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