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여름, 필자는 한-미 무역마찰 현황 취재를 위한 경제기획원 기자단의 일원으로 미상무성, USTR, 미의회 등을 방문 했었다. 공식적인 업무 외에 미국 현장에서 한국인들과 미국인들 사이의 정서적 충돌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을 체험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웬만한 사무실에도 손님이 찾아오면 차, 커피 등 마실 것을 내놓는다. 약 15명 정도의 기자 방문단의 일원으로 미국의 주요 기관들을 방문했는데 커피나 음료수는 커녕 물 한잔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가는 곳 마다 똑 같았다. 이들 중 누군가의 “Something to Drink” 요청을 기대했으나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USTR의 Assistant Representative (우리나라 과장급)을 만났을 때 필자가 얘기를 꺼냈다. “한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손님의 취향에 따라 커피 같은 것을 서비스하는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관습이나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그것에서 생기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바로 양국간의 통상 마찰도 서로간의 관습에서 오는 차이에서 생길지도 모르겠다” 라고 우회적으로 얘기했다.

그제서야, 같이 갔던 일행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 용기가 생겨 한국에서의 관습처럼 “커피 좀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하니 그 뚱뚱한 여자 관리는 자기를 따라 나서라하여 밖에 나가니 자판기 커피를 우리들 스스로 뽑아 들게 했다. 일종의 비공식 Coffee-Break였다.

워싱턴 방문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통상정책을 다루는 미정부기관이나 의회 뿐만 아니라 미측 기자들과의 만남을 요청한 결과 필자를 포함한 2명의 한국기자들이 Washington Post를 방문 했었다.

우리의 인터뷰에 응해준 기자는 스타인 베크라는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우리측 안내인에 의하면 그는 산업자원부 장관 등 우리나라 고위 관리들이 Washington 방문시 인터뷰를 여러번 한 지한파이며 권위있는 퓰리처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저 그렇지 하고 듣고만 있었는데 안내인의 이어지는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불뜨기 스타인 베크 기자는 동료기자의 아내와 결혼을 했고 그들은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사이좋게 근무 중이다 라는 것이다.

한-미FTA시대에 좋은 것도 많겠지만 우리 한국 남자들은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미국식 문화, 미국식 사고방식, 미국식 룰은 경쟁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Rule of Jungle이 개인의 생활 영역까지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때 체육기자로서 직업상 프로권투 실황 중계를 빠지지 않고 보던 시절에 한 유명한 권투 해설자의 말투가 매우 거칠었고 때로는 살벌한 느낌까지 받았었다. 후에 그 해설자의 쓰라린 과거 얘기를 듣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인즉 그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는데 도시락 싸가지고 매일 그의 아내를 따라다니던 현지 미국인에게 결국 아내를 뺏기고 말았다는 얘기다. 아마도 그것이 한이 되어 그의 권투 해설에 살벌함이 스며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