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 미국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다국적기업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 맹주자리를 차지한 “Great America” 건설의 일등공신이었다. 양곡, 기름, 자동차 분야의 미국계 다국적 기업들은 위세를 더하여 1960년대 때까지 다국적기업은 곧 미국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한-미 통상마찰의 원인은 바로 일본의 기업에 밀리기 시작한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리더쉽 유지를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국적기업의 특징은 거미줄 같은 정보망과 문어발 같은 인맥 형성이다. 헐리우드 영화 중에서 정치와 비즈니스의 결탁과 음모(connection & conspiracy)를 소재를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바로 미국의 본질을 보여주는 Non-Fiction 으로 보면 무방하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Second Japan” 으로 인식하고 통상압력의 고삐를 몰아친 자동차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자동차 메이저들은 아예 처음부터 한국기업들의 자동차산업 진출 자체를 방해했었다.

미국 메이저들의 치밀한 로비에 영향을 받았던지 세계은행(IBRD) 보고서는 자동차산업이 절대로 한국에서 꽃 필 수 없다고 했으며 국내 일부 최고 경제관료들 조차도 한국의 자동차산업 회의론에 가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의 조짐이 보이자 미국 메이저들이 한국자동차업체의 “괴심죄”에 대한 보복성 공세를 더해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BCS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의뢰로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어려움 속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 원칙을 따르려는 꾸준한 노력과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Korean Automobile Market” 제하의 홍보책자를 1990년 말부터 2000년대 초 5회에 걸쳐 제작, 미국전역에 배포했었다. 미국 메이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전쟁 인지라 나는 그들에 대한 조사,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비즈니스철학, 가치관을 정리했다. 역시 그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이 돋보였다. 인간의 가치와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들은 “왜 미국 차들이 한국시장에 더 많이 팔려야 하는가” 를 설명했다.

KAMA (korea automobile manufactures association) 홍보책자는 한국은 자유무역의 수혜자임을 명확히 밝히는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의 발전 전략과 비전을 제시했다. 중대형 차종을 중심으로 눈에 띠게 늘어나는 수입자동차 대수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한국 자동차업계의 “Cooperation + Competition under Globalization: 글로벌화 속에서 협력과 경쟁”이라는 메이저들의 경영원칙에 공감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2003년도 판에서 한-미FTA가 한-미 자동차산업 통상분규 해결에 일조 할 수 있음을 밝혔다.

예상했던 대로 “자동차 홍보책자” 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은 민감했다. 2000년 초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AmCham Korea)의 연례보고에서 “KAMA 보고서는 더 이상 발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 해 한국정책당국자에게 보내는 건의서(suggestion & recommendation)의 일부였다.

AmCham측의 요청이후 계속적인 홍보책자 발행 여부에 대한 우리측의 검토가 있었다. 나는 그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측 입장을 설명하는 보고서에 대한 구체적인 반론도 없이 무조건 발행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제국주의적 발상이다. 계속 발행하여 논리전으로 나가는 것이 업계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 결국 나의 주장이 받아져 홍보책자 발간은 계속 되었다. 그전보다 많은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기사작성, 디자인, 인쇄감리 등에 임했다. 미국측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묵은 인정을 뜻한다 (silence means consent).

자동차산업 뿐만아니라 철강, 석유화학, 섬유 등 우리나라의 다른 대미통상 산업홍보 자료들도 모두 BCS 의 손을 거쳤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배철수 당신은 한-미 통상문제 때문에 먹고 사는 것 같아. 미국이 없었다면 당신은 무얼먹고 살았지?” 나는 대답했다. “미국 없어도 돼, 미국 헤게모니의 대부인 메이저만 있으면…”